조각가 박상희의 2016년 작품 ‘불이(不二· 120x35x60cm, Mixed Media)’

인터파크씨어터가 가을 기획전으로 복합문화공간 NEMO(용산구 한남동 727-56 블루스퀘어 내)에서 오는 25일부터 11월 25일까지 중견 조각가 박상희와 서양화가 김경렬이 함께 여는 ‘불이(不二)’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개최한다.

이번 기획전의 주제인 ‘불이(不二)’는 말 그대로 ‘둘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풀어 쓰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둘로 구별해서 인식하는 대별 사항이 실제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을 말한다. 있음과 없음, 나와 나 아님, 샘과 굄, 하염없음과 하염있음, 선과 악 등 우리의 인간사는 수없이 많은 쌍 개념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그 쌍 개념은 나와 너를 가르고 가족을 이루며 사회와 문명을 일군다. 세속 현실은 이런 쌍 개념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쌍 개념을 명확히 가르는 능력을 우리는 분별력이라며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구별을 위험한 것으로 경계한다. 모두 나의 '분별'이 지어내는 부질없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본디 모든 사물은 하나의 상태일 뿐인데 사람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자기중심적으로 분별을 하며 급기야 옳고 그름, 심지어는 선악의 판단까지 가하게 된다고 탓하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분별임을 볼 때, ‘불이’란 이것을 초월한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사물을 나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둘 아닌 법문’의 경지, 그것은 곧 깨달음의 한 상태이다. 서양화가 김경렬과 중견조각가 박상희가 함께 여는 이번 전시회가 그 ‘불이(不二)’를 보여주는 좋은 예일 수 있다.

작품 ‘PIETA-사랑해’ 옆에 선 조각가 박상희.(PIETA-사랑해, Mixed Media, 122x128x370cm, 2016)

# 중견 조각가 박상희의 ‘불이(不二)’

전쟁, 폭력, 종교, 갈등의 문명사적인 시각을 예수와 부처 등을 도상으로 이용하고 미켈란젤로의 후기 양식, 일상적인 소재 등에 접목한 작품 등을 선보이는 중견조각가 박상희는 서울대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2001년부터 수년간 프랑스 파리에 살면서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각지를 여행하며 인간과 종교, 문명 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어왔다. 그는 이후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종교, 문명 간의 충돌과 대립으로 인한 테러와 전쟁, 그리고 신과 인간에 대한 작가로서의 근본적인 의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조형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나는 조각가로써 신이 만든 인간, 인간이 만든 신, 그 사이에서 인간의 갈등과 이념과 종교 간의 분쟁이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기독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와 불교가 본래 서로 다르지 않고 원래 우리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가 아닐까하는 불이(不二)의 개념으로 내가 본 세상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박상희는 93년 송은문화재단이 후원한 금호미술관 개인전과 2006 인사동 가나아트센타, 2007년 아트사이드갤러리를 비롯, 프랑스와 러시아 등에서 13차례의 개인전을 하였다. 또한 2016년 한불수교130주년전(갤러리 Pont des arts), 2016 창원국제조각비엔날레와 2015 Silk Road Light (아시아 현대조각회, 중국 감숙성 정부 초대), 2013 국제 해인아트프로젝트 (해인사) 등 160 여 차례의 그룹전을 가진바 있는 대한민국 중견 조각가다.

“사실 예술이 모든 삶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예술이 삶이거나 삶이 예술일 수 없습니다. 예술이 삶이 되거나 삶이 예술이 되는 것은 예술과 삶을 따로 구분해 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동일성을 강조하는 행위는 반대로 그 차이점을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동일성의 미학이 유효한 것은 동일성 속에 여전히 이러한 차별, 차이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로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나 표현하는 것 속에는 동일성을 향한 열망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극과 극이 통한다는 말처럼.”

박상희의 조각은 동일성과 차이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작품 속 예수와 부처, 십자가와 불상, 성과 속이 겹쳐지거나 포개져 있다. 이 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3미터 70센티미터가 되는 ‘피에타-사랑해’는 관음보살이 예수 혹은 미켈란젤로를 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 작품은 거친 질감과 손자국이 살아 있다. 미켈란젤로 후기 양식인 논피니토(non finito)가 연상되기도 하는 작품이다. 현실과 이상을 또렷이 구분했던 플라톤주의를 회의했던 시기에 미켈란젤로는 이 둘의 모호한 지점, 교집합을 고민하면서 미완성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이는 시간의 흐름, 인식의 점진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모호한 평가를 받아왔다. 박상희의 ‘피에타’ 역시 매끈한 질감으로 마무리되는 현대조각의 세련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말끔하게 완성된 조각은 마치 여행의 목적지 풍경만을 서술한 여행기 같기도 하고, 이러한 여행기에는 여행하기 전의 설렘, 분주함, 번잡함의 감정이나 시간들은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이 많은 부분이 생략돼 있다. 과정과 목적의 모호한 지점에 종교religion이 이어주다relier에서 왔든 종교는 분리보다 연결, 이어짐을 전제로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경계, 구분에 대해 질문을 한다. “애초에 둘은 하나가 아닐까하는 겁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이슬람의 알라이고, 유대교의 야훼이며, 중국의 상제(上帝) 혹은 천주(天主)이듯 세상의 많은 종교는 하나에 뿌리를 둡니다. 그러니 세상의 무수한 종교전쟁, 이권전쟁, 문명의 충돌은 다름을 강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조각에 등장하는 종교적 도상은 근원적 일자(一者), 원천적 감정으로서 사랑 등 근원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부처가 예수에 안기기도 하고 여러 부처가 하나의 사랑의 예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큰 이야기를 위해 종교적 도상만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작품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녹슨 철모 위에 앉은 부처 ‘내가 있는 곳이 법당’이나, 실제 포탄 속에서 꽃이 피어나듯 콜라주 된 예수 ‘꽃’은 실제 전쟁의 참상과 인간성 혹은 신성이 의문부호처럼 섞여 있다. 주전자 위에 ‘나 주전자’, ‘나도 부처’라는 글귀는 작가가 삶 속에서 이러한 큰 이야기를 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듯 하다. 실제로 그는 문명사적인 장소나 분쟁 지역에서 이러한 감상을 늘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주전자 내부에 앉아 있는 부처처럼 그 속엔 진실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것들인 사랑, 따스함, 근원성을 향한 지향과 의지가 숨겨져 있다. 내부와 외부, 여기와 저기, 하늘과 땅, 어제와 지금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서로 다름은 의미 부여에 따라 달라지는, 원래 하나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그의 작품 속에 내재돼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다툼과 분리에 저항하는 미적 파토스로 가득 찬 테러리스트가 되고자 한다. 예술가는 권력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견고한 이데올로기에 예술로써 저항하고 닫힌 사고를 열고자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기에 예술가는 독재적 권력자와 교만한 종교인, 그리고 그들의 시대에 늘 위험하고 불량스럽게 견뎌내야 하는 존재라고 그는 생각한다. ‘예술가는 그러한 시대에 총을 들지 않은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예술은 또 하나의 전복(顚覆)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말 속에 이번 전시의 주제가 왜 불이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총을 들지 않은 테러리스트. 그는 오늘도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깨달음과 무명이 다르지 않고 성(聖)과 속(俗)이 다르지 않고,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불이한 세상을 꿈꾸는 그의 작품은 호암미술관, 광양제철소, 김천종합체육관. 법보사찰 해인사, 서울 성수역 등에 설치 되어있으며, 그는 요즘도 삼청동의 집과 작업실인 강화도를 오가며 주문을 외운다. 불일(不一)이라는 현실에 대한 치열한 자각이 없는 불이(不二)는 공화(空華)와 같은 환영(幻影)일 뿐이라고.

# 서양화가 김경렬의 ‘불이(不二)’

최근 물의 정경과 사념적인 나무를 접목시킨 작품들을 선보이는 서양화가 김경렬

대중적인 팝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최근 물의 정경과 사념적인 나무를 접목시킨 작품들을 선보이는 서양화가 김경렬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불이’는 ‘둘이 아님’이란 의미로 차이나 경계, 구분짓기가 사실은 하나에서 나온 곁가지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철학, 종교, 이데올로기 등의 차이는 어떤 목적을 가진 동일성을 향한 욕망이지만 이미 이들은 그 출발의 차이를 인정하고 시작한 것들입니다. 믿음이란 추동력을 통해서만 가동되는 이러한 관념들은 사실 허상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보이지 않는 실체의 확증'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도와 공덕의 모체'라고도 합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변질되어 서로 싸우고 죽이는 행위 속에는 진실로 아름답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지향이 없습니다. 작품을 통해 우리들이 말하려고 하는 ‘불이’는 이 지향, 진실로 믿고 사랑하는 어떤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김경렬의 작품 'Autumn'(193.9x130.3cm, Oil on canvas, 2015)

서양화가 김경렬은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한때 일러스트와 광고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는 초기 인물군상과 자연풍경을 통해 인간의 삶을 표현하길 즐겨했고, 역사 속 인물과 비보이를 연결한 ‘비보이 시리즈’, ‘자전거를 타는 유명인’ 등 팝 리얼리스트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 김경렬의 작품들은 관조와 사념의 세계로 차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면 속 나무, 물과 돌, 그리고 인물은 현실의 대상을 재현한 듯 보이지만 이러한 소재는 정념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시킬 뿐이다. 초기에 그린 저자거리의 인물군상이나 유명인들을 캔버스에 소환한 팝적인 사실화들이 인물과 표현에 치중했다면, 이번 전시에 보여주는 풍경들은 물, 돌, 안개, 눈, 비 등을 통해 재현 이상의 무엇을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리얼리즘적인 방식을 고수하면서 고독, 고요, 성스러움, 상승, 적막의 감정들을 표현해낸 그의 작품 속에는 아무 곳에나 존재하는 하찮은 돌이나 나무가 심리적 색채를 띠면서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여러 개의 다른 롤러로 여러 겹의 색이 두께와 겹을 이루면서 표현된 물의 깊이나 청량감, 수평선이나 지평선이 사라진 몽환의 풍경, 자연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배치된 돌이나 인물 등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고 마음이다. ‘저녁을 바라볼 때 마치 거기서 죽어가듯 바라보고 아침을 바라볼 땐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는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성스러움이 현현케 하는 것, 어떤 신성성을 부여하는 것, 그래서 실재로 가득 찬 화면을 구축하는 것이 김경렬의 최근작들이다.

그는 1989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991년 한국구상청년작가전(일본, 고베), 2002년 1회 KIAF(서울국제아트페어), 2004년 세계평화미술대전(상해), 2011년 아트시카고, 2014 오포더블아트페어(런던) 등 수많은 국내외 그룹전과 단체전에 참여해온바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주)유공, 조흥은행, 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 코오롱그룹, 블라디보스톡연해주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업실은 구파발에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박상희와 김경렬의 이번 전시는 오는 25일부터 11월 25일까지 복합문화공간 NEMO에서 열리며 일반 관람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8시까지이고(토·일·공휴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 오프닝은 25일 오후 5시에 예정돼 있다. ※ 전시문의 : 복합문화공간 네모 02-6399-7459

김세중 논설위원  sjkim@newsinsid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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