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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문화도시 조성사업 추진관련 칼럼>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 여수
통합취재팀 | 승인 2022.06.29 11:37

“여수 돌산이었지.”

뜬금없는 딸의 질문에 엄마의 대답이 시작되었다. 큰 언니 시집가던 날로 돌아간 엄마는 초등학생이었다. 여수 돌산으로 가는 배를 타고 있었다고 했다. 무려 반세기 전의 일이다. 돌산대교가 없었던 그때 여수는 어떤 곳이었냐고 물었더니, 어린 엄마가 대답했다. 시집가는 언니만큼 예뻤다고. 큰이모는 결혼 후 지금까지 전남 여수에 살고 있다.

작가가 되기 전, 여수에 수없이 오가며 느낀 점이 있었다. 가진 것에 비해 겸손하고 사연은 많지만 과묵한 도시라는 것. 2012년 여수 해양엑스포가 개최되기 전까지 여수는 말이 없었다. 천혜라는 단어가 무색한 자연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낭만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이 없는 도시는 역사는 있되 소문은 없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덕분에 많은 작가가 여수를 흠모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 한강의 중편소설 「여수의 사랑」은 소설집의 표제작이다. 소설 속에는 마치 눈앞에서 여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묘사들이 속속 나온다. 소설이지만, 어느 한 도시를 가슴 깊이 새기지 않은 이상 나올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여수」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한 시인 서효인은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라고 썼다. 직접 떠나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지리를 알고 쓴 사람의 문장이었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이 여수여서 여수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졸필로 글밥을 먹게 된 나도 여수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돌산도 해변에서였다. 번아웃 증후군을 해소하려고 갔다가 계획에 없던 새 원고를 만들어 왔다. 자연과 동물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 자연은 늘 창의적이고 동물은 그에 순응하며 살아가는데, 사람만은 그렇지 않다. 특히 예술가들에게 매너리즘은 잔인한 고통이다. 유년 시절부터 바닷가에서 성장하여 바다를 질릴 만큼 보아온 사람인데도 여수에서는 안 써지던 글이 써졌다. 문학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험은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작가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장소가 무척 소중하다. 지나간 모든 시절을 불러들여 공존케 하고 목말랐던 감성에 젖게 하는 곳. 그런 장소는 말이 없어야 한다.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작가가 오롯이 작품 속으로 밀려들어 갈 수 있는 곳. 먼지까지 사랑할 수 있는 곳.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믿게 만들거나,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장소. 작가가 된 후에 만난 여수는 그런 곳이었다.

해양 도시의 지형은 미미하게나마 어떻게든 변할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에 따라 해수면이나 파랑 작용이 유동적인 데다가 간척 등의 인위적 사업도 원인을 더한다. 지구상의 모든 반도는 사람 눈을 피해 초초분분 변하고 있다. 그 때문에 반도의 이름을 지형적 특성만으로 짓기엔 무리가 있을 것인데, 그럼에도 여수를 ‘나비 반도’라 부르는 까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의 입구가 길쭉하고 해안선이 복잡하지만 침식 작용은 강하지 않아 나비 모양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나비는 앞날개만으로 비행이 가능한 곤충인데, 신기한 점은 나비 반도의 육로가 앞쪽에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나비 반도라 불리기 위해 작정한 지형처럼 보인다.

지역의 지리나 지형, 기후 조건은 지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관광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화예술에도 영향을 준다. 문화예술은 그 자체로 관광 상품이 되기도 해서 지역마다 콘텐츠 개발에 열을 올리지만, 지금까지 특별하달 것은 없었다. 조형물을 만들거나 건물을 지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건 어느 지역에서나 할 수 있다. 문화예술 도시로서 도약할만한 진정한 방향은 자연과 사람을 향해 있어야 한다. 이방인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자연, 예술과 융합할 수 있는 건강한 지역민, 권태의 행간에서 낭만을 끄집어낼 수 있는 곳. 그 조화가 남아 있는 도시의 선두에 여수가 있다.

“물도 좋고 사람도 좋더라.”

여수에 관해 엄마가 정리한 문장이다. 물이란 자연을 통칭하고, 사람이란 여수 시민의 인품을 말하는 것. 반세기가 넘도록 여수에 드나든 사람의 의견이니 나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물 좋고 사람 좋고 영감까지 주는 도시라니. 여수는 문화예술 도시로 성장할만한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었다. 나비 반도를 따라 자물자물 잠겨 있는 감성과 낭만은 고귀한 예술적 자원이자 그 자체가 문화라 하겠다.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라 하였으니, 문화 도시로 도약할만한 그 이상의 가치가 어디 있을까.

 

이은정

소설가. 2018년 단편 소설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등단. <대한경제>와 잡지 <시마>에 에세이를, 웹진 <같이 가는 기분>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으며, 북크루에서 소설 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소설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산문집 『쓰는 사람, 이은정』, 『눈물이 마르는 시간』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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