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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사로잡은 서예가, 김민정 교수호방한 대전(大篆)과 행초서(行草書)로 중국에서도 인정받아
김세중 논설위원 | 승인 2015.11.17 21:55

▲ 2014년 인사동에서 있었던 중국미술대학교(中國美術學院) 동문전 ‘서호예연전’에 출품했던 작품 상성약수(上善若水) 앞에선 김민정 교수.

[인사이드코리아_김세중논설위원]

#1. 5월의 항저우(杭州)

'서비서2015-항저우국제서법예술제(書非書2015-杭州國際書法藝術節)’가 열리던 날. 이른 아침 호텔 식당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전날 항저우에 도착해 시내 호텔에서 묵고 아침 일찍 인사차 이곳에 들렸다는 그는 환하게 웃으며 한 장의 명함을 건넸다. ‘광서예술대학교(廣西藝術學院) 서법과 교수 김민정(金玟廷)’. 명함을 건네받지 않았더라면 교수라기보다는 학생으로 보일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그날 오전, 그가 2006년 학사, 2009년 석사, 2012년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미술대학(中國美術學院)의 넓디넓은 전시장 초입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질문과 사진촬영에 임하며 짧게 작품설명을 하고 있었다. 우리말 닿소리인 ‘자음(+consonant)’을 형상화한 작품이었는데, 그의 설명을 들으니 한국전통 모시에 글씨를 쓸 수 있게 처리를 하여 서비서 중 서(書)의 소해(小楷)를 쓰고, 다른 검은 부분인 자음은 비서(非書)의 부분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자음은 피아노 검은 건반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것이예요. 재료는 먹과 염료 혼합재료로, 현대서예에서 충세(冲洗)라는 방법을 4번 정도하여 효과를 낸 작품이지요.” 작품 앞에 선 그녀의 사진을 찍고, 이어서 열리는 왕동링(王冬齡) 교수의 작품 전시회(書非書與現代書法文獻展暨王冬齡作品展)장으로 이동을 하여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여전히 분주한 그를 또 보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중국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그의 박사시절 지도 교수였던 왕동링(王冬齡) 교수가 주최한 만찬장에서 그는 책 한 권을 건넸다. ‘한국현대서예간사(韓國現代書藝簡史)’. “2월에 나온 책인데 전문도서라 전공자들에게만 관심을 끌겠지요. 중국어판이라서 한국독자들에게는 생경할테지만, 한국현대서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만든 책이니 한번 읽어봐주세요.”

다음날아침, 호텔로비에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와 차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또 다른 일정이 있어 급히 이동을 해야 된다며 황급히 차에 올랐다. 광서예술대학에서의 강의, 프로젝트 연구, 국제워크샵과 국제서법초대전시회 등등…. 그는 정말 눈코 뜰새없이 바빠 분초를 쪼개 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중에 한국에 들어오시면 한번 뵙도록 하지요.”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었다.

#2. 인사동 경인미술관 전통다원

처마 끝 은은한 풍경소리와 한옥의 옛스러움이 마치 산사를 찾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인사동 경인미술관 전통다원에서 방학 중 잠시 짬을 내 들어온 그를 만났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그는 대학원 지도교수가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닙니까?”. 걱정스레 물으니 오히려 그는 상큼한 미소와 함께, “지도할 수 있는 대학원생들이 생긴다는 것은 기쁜 일이예요. 미치도록 바빠도 매일 매일이 행복하고 기쁘고 설레요.” 무엇이 그를 그렇게 설레고 기쁘게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직장에서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만 꾸다 끝난다. 성공을 이루는 원칙, 방법에 대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원칙을 세우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다가 실패하면 곧바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 나의 꿈과 비전은 무엇이다!’라고 확실하게 목표를 세우고, 성공을 향하여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아니, 이미 그것을 알고 실천해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사동의 전통다원에서 한국에 들어온 그를 보며, 열정에 충실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 주어진 환경을 탓하며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어떤 행동도 실천에 옮기지 않고 두려워만 하는 많은 이들에게 그는 자극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8살에 서예를 시작해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수많은 상을 탄바 있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곧바로 항저우의 중국미술대학교(中國美術學院)에 입학해 그곳에서 학사와 석사, 그리고 서법계(書法系) 박사학위를 받았고 마침내 중국 광시 자치구의 성도(省都)인 남녕시(南寧市)에 있는 광서예술대학교(廣西藝術學院) 서예과 교수가 되었다. 자국어도 아닌 중국어로 모든 공부를 해야 했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그곳 대학에서 외국어, 전공 기초이론, 서예실기, 전공 심층논문, 서예, 전각실기, 예술학 개론, 중국미술사와 외국미술사, 고대한어까지. 한문이야 어려서부터 익혀오고 써왔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겠지만, 중국어로 인사만 할 줄 아는 정도의 회화 실력이었다니 그의 오늘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까 미루어 짐작을 할뿐이다. 그렇게 그는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서른한 살에 박사가 됐다. 그리고 곧바로 교수가 되어 그곳 대학에서 일한지 2년 반 만인 서른넷의 나이에 광서예술대학교 동양학부 서예과 학과장이 된 것이다. 중국생활 14년만에 이룬 결과였다.

일년이면 10여차례의 전시와 한국에서 오는 서예계 인사들의 통역, 현지 촬영차 방문하는 한국 방송의 코디네이터, 어찌 알고 연락을 하는지 모를 수많은 중국유학 희망자들의 SNS에 일일이 답변을 해주는 등 그는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도와주려 노력한다. 현재 중국전문가국 외국인 전문가, 중국미술대학교 현대서법연구소 연구원, 한국전각학회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마치 지난 2014년 중국미술대학교 동문전인 ‘서호예연전’에 출품했던 그의 작품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을 낮추어 겸손하며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

우리나이 서른넷의 김민정 교수. 누구나 바라는 성공, 행복한 미래, 가치 있는 삶. 이 모든 것은 현재에 충실하고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 바로 그 자체였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이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잠시라도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잊고 있었을 그 누군가가 용기와 희망을 다짐할 수 있는 계기되기를 희망해 본다.

▲2014년 선면청풍(扇面淸風)전에 출품됐던 김민정 교수의 예서작품 ‘호연지기(浩然之氣)’
 
 
 
 

김세중 논설위원  sjkim@newsinsid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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