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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한 행복한 여정(旅程)팬플루트 연주자 정종수의 끝나지 않은 꿈과 도전
김세중 논설위원 | 승인 2022.10.20 12:07
행복은 여정이지 결코 목적지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는 팬플루티스트 정종수.

 팬플루트 연주자 정종수. 갑술년 개띠로 우리 나이 스물아홉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이력엔 유독 ‘최초’라는 꾸밈말이 많이 붙어 다닌다.

 열두 살, 교회에서 우연히 듣게 된 팬플루트 소리에 빠져 그의 평생 스승인 홍광일 선생에게 팬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했고,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시작된 ‘최초’라는 꼬리표는, 음악의 길을 가는 누군가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만큼 고단했지만 행복한 여정임이 분명하다.

#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팬플루트을 전공하고 싶어 많은 대학의 문을 두드렸지만 애석하게도, 당시 우리나라에는 팬플루트를 가르치는 대학이 단 한 곳도 없었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제가 가고 싶었던 대학에 연락해 ‘제가 팬플루트를 전공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팬플루트 과가 없으니 우선 제가 그 대학에 응시해 시험만 볼 수 있게 해달라’ 전화를 드렸어요. 이틀 뒤 학교 측에서 답장이 왔고, 실기시험을 본 후 합격해 우리나라 대학 최초 팬플루트 전공 학생이 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는 그렇게 2012년 여름, 팬플루트로 서울종합예술학교에 입학을 한다. 그리고 2014년 3월 세종대학교 콘서바토리 글로벌지식교육원 음악과로 편입해 두달여 재학을 하다가 2014년 6월 해병대 군악대로 입대를 하게 된다.

 “그때까지 해병대 군악대에 팬플루트 전공병을 뽑은 일은 전무했어요. 군악대에 들어가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다른 병사들에게 미안했거든요. 상대적으로 공연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햇수가 적었으니까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고, 나중에는 제 연주실력을 인정받아 많은 행사에 불려 다니며 연주할 수 있었어요.”

 2016년 3월 해병대 군악대를 전역한 그는 곧바로 복학을 했지만, 팬플루트에 대해 여전히 목마른 갈증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졸업과 함께 팬플루트의 종주국인 루마니아를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 나선다.

 “영어는 물론 루마니아어도 전혀 할 줄 몰랐어요. 막연하게 루마니아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후부터는 막무가내로 방법을 찾았어요. 루마니아 대사관을 비롯해 외국어대 루마니어과에 메일을 보내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참 어렵게 많은 분의 도움으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립음대로부터 와도 좋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지요. 그땐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어요.”

 그는 그렇게 2018년 8월 세종대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10월 루마니아 유학길에 오른다. 그의 인생에 또 한 번의 변곡선을 긋는 사건이었다. 물론 언어가 통하지 않았으므로 곧바로 입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1년간 부큐레슈티 어학원을 다녀야 했다. 어학원에 다니고 있는 한 달여쯤 지났을 때 우연히 팬플루트를 보러 루마이아 최고의 팬플루트 공방엘 들렸다가 그곳 팬플루트 장인 프레다의 도움으로 그는 팬플루트의 살아있는 전설 게오르게 잠피르(Gheorghe Zamfir·82세)를 만나게 된다.

 “악기 공방에서 프레다 악기장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제 꿈이 게오르게 잠피르 선생님을 만나서 그분에게 한번 레슨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럼 지금 어디에 있나 전화 한번 해볼까?’ 하시더라구요. ‘장난하시나?…’ 잠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내 전화를 거시더니 마침 공방 바로 옆에 있는 연습실에 계시다며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순간적으로 심장이 많이 뛰었어요.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일이 일어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게오르게 잠피르는 루마니아 거에슈티 출신의 작곡가이자 팬플루트 연주자로, ‘팬플루트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대표곡은 ‘Lonely Shepherd(영화 킬빌 OST)’와 ‘Pluie D’ete(여름비)‘ 등이 있으며 대중적인 이지 리스닝 장르에서 바로크의 협주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제임스 라스트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고, 루마니아 민속예술단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카리스마 넘치는 거장을, 정종수는 루마니아로 온지 한 달 만에 바로 눈앞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 즉석 오디션이 펼쳐졌고, 잠피르는 그에게 두 번의 레슨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잠피르는 그저 팬플루트가 좋아서 한국에서 루마니아까지 날아온 청년 정종수를 선뜻 제자로 받아준 것이다.

 “그날 숙소로 돌아가 쉽게 방으로 들어가질 못했어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계신 홍광일선생님께도 전화를 걸어 ‘제가 드디어 잠피르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게 됐어요!’ 큰 소리로 소식을 전했어요. 그날의 감정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찬 이야기가 아닐 수 없어요.”

 그렇게 두 번의 레슨이 끝나던 날 잠피르는 정종수를 부르더니 악보 한 장을 건낸다. “다음엔 이 곡을 연주할 거니 연습해와라.” 분명 두 번만 레슨을 해주겠다고 말했었는데 이건 또 웬 행운인가 생각하던 정종수는 이내 현실적인 문제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은 역시 잊고 있었던 가난한 유학생의 신분이었다. 한국에서 어렵게 마련해온 유학경비도 넉넉지 않았고, 계속해서 이 세계적인 연주자에게 레슨을 받는다는 것은 왠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그는 잠피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페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피르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네가 나에게 줄 페이는,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 그 자체다. 네가 멋있는 무대에 서서 팬플루트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가장 의미 있는 페이니, 돈 걱정은 말고 그저 열심히만 하거라.” 정종수는 그때의 감동이 떠오르는지 잠시 눈을 감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잠피르는 이후로도 오래도록 그에게 음악 외에도 자신의 철학을 틈틈이 이야기해주면서 레슨을 해주었고, 루마니아의 크고 작은 행사에 그를 데리고 다니며 연주하기를 좋아했다.

# ‘최초’에서 ‘최고’를 향해…

 

그렇게 잠피르에게 개인레슨을 받으며 어학원을 마친 정종수는 2019년 10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국립음대 팬플루트 석사과정에 입학을 하고, 2021년 졸업을 하게 된다.

 부쿠레슈티 국립대학에 재학 중인 2020년 8월에는 운 좋게도 재외동포들의 이야기를 전해온 재외동포 전문 프로그램 YTN글로벌코리안 ‘자랑스런 한국인’에 ‘없던 과도 만들었다?! 팬플루트 전공생, 정종수’라는 제목으로 그의 이야기가 TV를 통해 상세히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루마니아에 머물던 2021년 7월 그는 루마니아 크라이 오바(Craiova) 콩쿠르에서 팬플루트 부분 1위의 영광을 안고 마침내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오자마자 많이 바빴어요. 크고 작은 연주회도 있었고, 돌아오면 하겠다던 레슨도 잡혀있었거든요. 운이 좋게도 2022년 3월부터는 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게 됐고, 4월에는 귀국 독주회도 잡혀있어 진짜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게 지낸 것 같아요.”

# 그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5년 부천의 한 교회에서 그의 영원한 스승 홍광일(한국팬플룻오카리나강사협회 회장·팬플룻오카리나연주자) 선생을 만나 팬플루트를 시작한 소년 정종수. 그는 이렇게 온갖 ‘처음’을 극복하고 모든 것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팬플루티스트가 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꿈을 향한 열정과 용기였다. 얼마나 포기하고 싶고, 힘든 일이 많았겠는가. 하지만 그는 꿈을 향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열망을 열정으로 채워온 끝에 모두가 바라는 팬플루트 연주자가 되었고, 대학에 출강하며 팬플루트를 가르치는 겸임교수가 되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담감도 있지만 더욱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최초’에서 ‘최고’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거예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열심히 노력하며 채워 나가려구요. 그리고 언제나 연주자로서, 교수로서, 모두가 저를 통해 팬플루트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잘 이끌고 싶어요. 제가 선생님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말이예요.”

 그는 지난 16일 10박 11일의 일정으로 한국팬플룻오카리나강사협회 회원들과 루마니아를 방문 중이다. 올 7월, 작은 공연과 그의 스승인 잠 피르 선생을 만나기 위해 잠시 루마니아를 다녀온지 3개월 만에 다시 루마니아를 찾은 것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함께 간 강사협회의 회원들과 현지 팬플룻 캠프를 진행하게 된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번 캠프에선 잠피르의 팬플룻 마스터클래스와 콘서트도 준비되어 있어 그곳에서도 바쁘긴 매한가지지만 그는 여전히 기쁘다.

 “홍광일선생님을 비롯해 협회의 많은 분에게는 채무 같은 마음의 빚이 있거든요. 정말 어려울 때마다 많이 도와주셨어요. 만일 그분들이 없었다면 유학도 어려웠을 거고, 지금의 제가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배워가실 수 있도록 열심히 도우려 해요. 일단은 이곳에 도착해 준비됐던 팬플룻마스터클래스와 콘서트도 잘 끝나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어요. 이제 음악의 도시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로 이어지는 동유럽 투어를 잘 마치고 돌아가 다시 열심히 팬플루트를 더 알려야지요.”

 신비롭고 환상적인 음색, 부드럽고 청아하면서도 애절하고 쓸쓸한 소리의 팬플루트, 그것의 본고장은 루마니아가 맞다. 하지만 훗날 누군가가 청년 정종수가 잠피르의 고국 루마니아를 찾은 것처럼 그를 찾아 한국으로 올 수도 있는, 그런 일이 분명 일어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오늘 아침 유튜브를 통해 다시 듣는 그의 팬플루트 연주 속에는, 누군가의 영혼을 어루만지는듯한 깊은 음색 안에 진심, 그의 성실함과 겸손함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무르익는 이 가을의 따뜻한 오후 햇살처럼.

 

개성이 뚜렷한 루마니아 전통의상 ‘이예’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팬플루티스트 정종수.

김세중 논설위원  sjkim@newsinsid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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