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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모리스 화이트를 꿈꾸는 트롬보니스 이한진
김세중 논설위원 | 승인 2019.03.29 18:08
대한민국 최고의 트롬보니스트 이한진

지독한 연습벌레에서 최고의 연주자가 되기까지

 1976년 12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서울로 상경한 이한진은 서울사대부중을 거쳐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사립 전문계 고등학교인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비록 중학교 때 시골에서 전학을 왔지만, 중학 내내 학업성적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도 괜찮았을텐데 이한진은 전문계 고등학교를 택했다. ‘왜 전문계 고등학교였냐?’고 묻자, 그는 ‘공고에 진학해 나중에 상고 나온 아가씨와 결혼해서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고 답했다. ‘소박하게 살고싶었다?!!!’.

 소박한 삶을 규정하는 공식은 없지만, 이후 이한진의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의 삶은 소박한 삶과 연관되는 일반적인 태도의 패턴을 그대로 보여준다. 꾸며진 미소와 외모보다는 진실된 마음과 생각으로 자신을 정갈하게 다듬을 줄 아는 지혜를 쌓으며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눠주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이한진이다.

  “광운전자공고에 입학하는 날, 제 운명이 결정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입학식에서 관악부 선배들이 나와 연주를 해주었는데, 그 수십 명이 내는 웅장한 소리에 충격을 받아, ‘아, 내가 할 것은 바로 저거다!’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게 소망하던 고등학교 관악부에 들어간 이한진의 솔직한 바람은 색소폰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당시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색소폰을 부는 차인표와, 소프라노 색소폰의 마술사로 불리는 케니 지(Kenny G)의 영향으로 국내에는 엄청난 색소폰 붐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색소폰은 인원이 다 차 있는 관계로 그는 하는 수 없이 트롬본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 악기와 저하고 얼마나 잘맞던지…. 하루에 열 시간을 불어도 질리지 않고, 지치지도 않더라구요. 일주일도 안돼서 소리를 내기조차 어렵다는 이 악기로 ‘애국가’를 연주하니 ‘천재가 나타났다!’ 난리들이 났었어요.”

 그때 광운전자공고 교사였던 김상은 선생(현 광운동문밴드 총지휘자)께서 그에게 음대지망을 권유했고, 그는 어머니를 졸라 중고 야마하 트롬본을 사서 열심히 입시준비를 한 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을 하게된다.

 “한양대 음대는 트롬본이 특히 치열한 학교였어요. 선배들이 음악계를 다 움직이고 있었고, 하필 그해에는 단 한 명만 뽑는 해였거든요. 그래도 한양대가 목표였기 때문에 과감히 지원을 했고, 다행스럽게도 합격을 하게 되었죠. 생각해보면 모든 게 꿈만 같고 참으로 감사한 일들이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했죠. 대학생활 내내.”

 그는 한양대 음대에 재학 중 경찰악대를 다녀왔고, 졸업과 동시에 클래식을 그만두었다. 클래식에서 트롬본은 교향악단에 취업하여 생계를 보장받고,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주어진 곡들을 연주하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지만 왠지 그것은 그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솔로연주자가 되고 싶었고, 자유로운, 한계가 없는 재즈가 더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많은 재즈곡을 밤새워 듣고, 똑같이 카피해서 연주해보곤 했다. 주변의 반응은 너무 좋았다. 여기저기서 같이 연주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강대관·맹원식선생과의 만남

 그중에서도 가장 운이 좋았던 것은 대한민국의 재즈 1세대 연주자 중 최고의 재즈 트럼펫터인 고 강대관 선생을 만난 것이었다. 강대관 선생께서는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재즈의 길을 열어준 은사로 기록될 만큼 제자의 수가 많다. 색소포니스트 이정식과 피아니스트 임인건, 보컬리스트 웅산, 그리고 트롬본 연주자인 이한진과 트럼펫터 김예중이 그들이다.

 “그때 저는 강대관 선생의 ‘딕시랜드 재즈밴드’에서 2년 반 정도 활동하게 되었어요. 강대관 선생님 밑에서 제대로 된 재즈의 맛과 기분, 정통을 배운 셈이지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뉴올리언스에서 생겨난 초기의 재즈인 ‘딕시랜드재즈’를 처음부터 탄탄히 접할 수 있었으니까요.”

 딕시랜드 재즈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이론 공부도 병행해 나갔다. 그의 이론 공부를 도와준 분은 우리나라 최고의 재즈 이론가이자 편곡자이신 맹원식 선생이었다. 맹원식 선생께서는 한국최초 재즈 빅 밴드를 결성했고, 1965년 KBS TV 전임 편곡자로 활동하는 등 대한민국 최고의 재즈 편곡자이며 지휘자로 재즈계의 거목이었다. 이한진은 3년 가까이 맹선생을 찾아다니며 재즈 이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틈틈이 가요계 세션으로도 활동하게 되었고, 싸이의 나팔바지, 장윤정의 트위스트 등 지금도 유명한 대중가수들의 히트곡에는 여전히 이한진의 이름이 오르고 있다. 또한 그 사이 이한진밴드, 러쉬라이프밴드, 더내셔널빅밴드 등의 이름으로 세 장의 앨범을 냈고, 국내 유수 대학의 실용음악과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2007년에는 킹트롬본 월드아티스트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지독한 연습벌레였고, 꾸밈이나 거짓 없이 수수한 촌놈이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사석에서 농담처럼 얘기해요. 마누라 손을 잡는 것보다 트롬본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더 편하다고.(웃음) 트롬본을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단한번도 지겹다고 생각해보거나, 이 길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을거구요.”

4집 앨범 ‘With You’ 발매와 이한진의 꿈

 총 11곡이 수록되어 있는 이번 이한진밴드의 4집 앨범 타이틀 곡인 ‘위드 유(with you)’는 빠른 템포의 곡이지만 멜로디는 어딘가 여유로우면서도 트롬본 특유의 따뜻한 음색이 나서 이 따듯한 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특히 이번 앨범엔 마치 미국 출신의 ‘어스 윈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음악을 듣는듯한 브라스 사운드가 유독 돋보이는 곡이 많고. 그밖에도 즐거운 펑크 리듬과 락, 그리고 블루스와 삼바에 이르기까지 앨범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나날이 진화하는 이한진 밴드의 음악적 내공이 돋보이는 밝고 따뜻한 멜로디의 곡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소박한 삶을 꿈꾸었던 이한진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재즈계 최고의 트롬본 연주자로, 재즈뿐만 아니라 가요, 클래식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활동하고 있으며 일반 대중들보다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세션맨이다. 재즈평론가 남무성은 “이한진의 등장으로 브라스가 중심이 된 정통 딕시랜드 사운드뿐만 아니라 1950~60년대 모던재즈 시대에 유행했던 3관 편성을 축으로 한 6중주, 나아가 그 이상의 빅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협주가 가능해졌다는 점은 분명 한국재즈사에 기록될 수확이라 할만하다”고 말한 바 있다.

 본류재즈를 시도하는 젊은 밴드가 전무한 상황 속에서 그의 음악적 동료들과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있는 이한진을 보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팝밴드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리더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가 생각난다. 1969년 동생 버딘 화이트와 함께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결성을 주도했고 팀의 음악적 기둥이었던 것처럼 이한진 역시 나날이 진화하는 그의 밴드의 정신적인 지주로 팀을 잘 이끌고 있다. 이번 앨범엔 트롬본 이한진, 트럼펫 김동하, 색소폰 최예찬, 키보드 문상선·박상현·금명식·조윤성·최부미, 일렉베이스에는 오영준·김재국, 드럼 노용진·엄진용, 퍼커션 조재범, 보컬에는 아리엘 등 이한진밴드하면 쉽게 떠오르는 많은 뮤지션들이 참여했다.

 “트롬본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인 거 같아요. 저는 앞으로도 이 트롬본과 함께 사람을 살리는 음악가가 되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더 노력해야겠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이 말한 것처럼 음악은 나의 생명이며, 나는 연주하기 위해 살고 있으니까요.(웃음)”

 그는 보통 연주자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푸른 하늘을 높게, 빨리 그리고 아름답게 나는 것을 상상하며 가냘픈 날개를 펼쳐왔다. 그는 매일 매일을 매서운 칼바람을 가르며 나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다했다. 마침내 이한진에게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푸른 바다를 마음대로 비상하며 생계를 해결할 수 있었고, 드높은 창공을 날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또 다른 이상을 연주하며 그 집단의 리더로서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재즈와 함께. 꿈은 곧 사람이다. 모리스 화이트를 꿈꾸면 모리스 화이트가 되는 것이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를 생각하면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가 되는 것이다. 머지않은 시간 이한진이 모리스 화이트가 되고, 이한진밴드가 어스 윈드 파이어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이 앨범이, 앨범 속의 연주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한진밴드 4집 앨범 'With You' 앨범 자켓
이한진밴드 4집 세션들(Sessions)

김세중 논설위원  sjkim@newsinsid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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