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블루(Paradise Blue)-Mixed Media on Canvas-145.5x227.3cm-2010.

“나의 작업은 사람들의 시선을 잘 끌지 못하는 작고 하찮은 사물들을 통해서도 다양한 꿈을 꿀 수 있고, 그들에게 색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세상 사람들과 조우하게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 비롯된다.”

작가 헬렌 정 리(Helen Chung Lee)의 파인아트전 ‘아름다운 유혹’ 팸플릿에 나온 작가노트다. 헨렌 정 리의 이번 전시는 지난 12월 24일 종로구 돈화문로 한국문화정품관(관장 박현)에서 시작돼 오는 2월 12일까지일반 관람객과 만난다.

헬렌 정 리는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출생해 미국 미시간대학 사진학과 석사과정, 미국 콜로라도대학 영화학과와 사진학과를 복수 전공한 재원으로, 그는 그동안 한국과 해외에서 이미 100여 회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하고 참여한바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속의 중견(中堅) 작가이다.

그는 미국에서 출생해 사진과 영화를 전공했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 마다 경향 각지를 여행하며 우리 주위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많은 사물들에게서 새로운 의미와 색다른 이미지를 찾아내곤 했다. 예를 들면 오래된 사찰 기둥의 옹이라 던지, 먹고 버린 전복 껍데기 속의 문양 등에서 색다른 이미지를 찾아내고, 그럴 때면 그곳에 머물러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는 인화된 현상(現像) 속에 그대로 머물지 않고 거기에 자신만의 ‘레이저트랜(Lazertran) 기법’을 동원해 새로운 세계를 연출해 냈다.

그의 작품 속 레이저트랜 기법이란, 특수한 인화지에 이미지를 프린트 한 후, 물속에서 인화지만 벗겨내고 캔버스나 다른 사물에 이미지를 옮기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이를 위해 1차적으로, 근접 사진을 통해 평범하고 단편적인 사물의 추상적인 개념을 포착해 내고, 이후 레이저트랜 기법을 통해 사진을 캔버스로 옮긴 후 아크릴 물감을 이용해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는 방식이다.

한국문화정품관의 2층 계단을 시작으로 3층 갤러리를 빼꼭히 채우고 있는 그의 작품 100점은 형형색색의 컬러와 다채로운 상상의 세계가 더해져 때로는 강렬하고 산뜻하게, 때로는 아주 몽환적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싹트다(Sprout)-Mixed Media on Canvas/116.8x80.3cm/2007

캔버스의 표면에 사진이미지를 올려놓고 혼합재료로 가공한 이미지는 사진과 회화의 접목과 혼재 속에 독특한 이미지로 환생한 것들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여러 장면들에 헬렌 정리는 무척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제목을 붙여주었다.

2007년 경에 시작된 헬렌 정 리의 초기작인 ‘숨바꼭질(Hide & Seek– Wood’ 시리즈는 나무에 담긴 이미지들에 회화의 기법을 실어 완성해 낸 작품들이다. 그는 이 시리즈를 통해 나무는 물론 쉽게 지나쳐 버릴 전복 껍질에도 자신의 상상력을 더했다. 덕분에 전복 껍질이 띠고 있는 물결무늬와 강한 진주광택은 그의 손길에 의해 캔버스 위에서 새로운 세계로 재탄생했다. 그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던 사물이 ‘하늘 연못’이 되었고, ‘파라다이스’와 ‘마법의 산’이 되었으며, ‘바다의 유혹’과 ‘끝없는 기다림’ 등의 제목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헬렌 정 리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2008년부터 시작했던 ‘꿈의 풍경(Dreamscape)’ 시리즈에서는 전복 껍질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나 몽환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2012년 이후 사진과 회화를 융합시키는 새로운 기법에 천착하기 시작한다. 이후 ‘달맞이’와 ‘내 안에 너 있다’, ‘어느 멋진 밤’, ‘사랑에 빠진 날’ 등의 작품이 ‘감상적인 풍경(Sentimental Scenery)’ 시리즈로 완성돼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부터 시작돼 오는 2월 12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는 각 시리즈 별 특성이 담긴 작품 100점이 전시되고 있다. 나무에서 시작해 전복 껍질로 이어진 1차 피사체의 변화와 더불어 시간에 따라 달리했던 작가의 작업 의도를 한 눈에 가름해 볼 수 있는 이 특별한 전시에는, 단지 사진이 기록과 재현에만 머물지 않는 다는 것을, 사진적 시선은 우리 눈이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장면을 환각처럼, 가상이지만 실제처럼 혹은 무한한 연상이미지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영택 교수(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는 “헬렌 정 리의 작업은 자연에 내재된 신비스러운 미적 조화와 놀라운 색채, 무늬를 발견하고 이를 사진으로, 아니 사진과 회화의 결합으로 드러낸다”고 말하고, “각 시리즈 별 특성이 담긴 작품은 나무에서 시작해 전복 껍질로 이어어진 피사체의 변화와 더불어 시간에 따라 달리했던 작가의 작업 패턴과 소망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 지를 오롯이 보여주는 의미있는 전시”라고 전했다.

많은 평론가들과 미술애호가들의 극찬을 받은 이번 전시는 아쉽게도 오는 2월 12일 막을 내린다. 그러나 나무에서 시작해 전복 껍질로 이어진 피사체의 변화에 따라 작가가 담아낸 숨은 에너지와 수많은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회자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또 다른 시간이 되면 그는 또다시 우리 앞에 사진과 회화의 콜라보,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작품을 들고 나타나 우리를 유혹할지도 모른다.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에 그가 우리를 놀라게 했던 ‘아름다운 유혹’처럼.

일몰(Sunset)-Mixed Media on Canvas/80.3x130.3cm/2007

(전시문의: 한국문화정품관갤러리 02-747-5634, 매주 월요일 휴관, 무료관람)

지난 1월 14일(토) 오후에 있었던 리오픈식에서 작품해설과 인사말을 하는 박현 한국문화정품관 관장

헬렌 정 리의 '아름다운 유혹'전 리오픈식에 초대된 중국의 얼후 명인 양홍위 교수의 공연 모습.

김세중 논설위원  sjkim@newsinsid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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